(인터뷰)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을 만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집과 가족, 일 모두 이루었다고 생각한 만수(이병헌)가 하루아침에 실직하면서 재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하는 이야기다. 미국의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장르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하며,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로 한차례 영화화된 적 있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무산되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목표로 캐나다, 뉴잉글랜드의 무수한 주택과 제지 공장을 방문해 장소 헌팅까지 마쳐 스토리보드로 다 담아왔던 상황에서 엎어졌다. 이는 박찬욱 일생의 숙원이 되었다. 작품 하나 끝나면 ‘어쩔수가없다’를 조금 손보는 식으로 하나씩 다시 세웠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 10여 년을 보낸 창작의 고통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 22일 그를 직접 만나 영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예정대로 할리우드풍으로 했다면 만수 역할로는 언제나. ‘잭 레먼’인데 만수에게 그런 특질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연결 고리도 있다.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는 코스타 가브라스 부부(제작자 겸 아내, 미셸 레이 가브라스)의 프로듀싱 작품인데, 코스타 감독의 ‘의문의 실종'(1982)에도 잭 레먼이 나온다”라며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통틀어 꼭 작업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쓰리 몬스터'(2004)로 두 차례 호흡 맞춘 이병헌과 재회한 소감을 두고는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이병헌과 또다시 함께 하자고 말만 하다가 드디어 만났다. 목소리 톤을 멋지게 하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여러 테이크 중에 발성이 안 된 테이크를 고른 것 같다. 매우 자연스럽다. 파피루스 면접 보는 장면에서 ‘싫은데요’라고 말하고 나서 혼자 크게 웃을 때 건치 미소를 전복해 활용하고 싶었다”며 예쁜 건치 미소를 한심스럽게 써먹었다고 농담을 던졌다.
영화는 박찬욱의 작품 중 가장 웃기는 영화로 알려졌다. 그동안 비릿한 유머, 날 선 풍자를 즐기기는 했지만 대놓고 유머를 드러내 큰 변화다. 이병헌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웃픈 상황이 반복되는 블랙 코미디의 결이 짙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처음부터 블랙 코미디를 계획한 건 아닌데 제작 과정에서 몸 개그가 점차 늘어났다. 원작을 읽을 때 제가 하면 좀 더 웃겨볼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다가 저 포함 세 명의 공동 각본가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었다. ‘코미디’를 강조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몸 개그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
범모 집 뒷동산에 있다가 비탈길에서 쭉 미끄러지는 것도 사실은 장소 스카우팅 갔다가 ‘미끄러지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병헌 씨가 예상치 못한 순간, 진지한 순간을 오가며 슬랩스틱 몸 개그도 잘한다. 뱀이 무서워서 지팡이 짚고 가다가 제풀에 놀라는 장면도 우습다. 시나리오를 읽더니 대뜸 ‘웃겨도 되냐’ 물었고, 저는 ‘웃길수록 좋다’고 답했다. 본인도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도 많이 떠올랐다.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망가지는 개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생각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코미디 요소가 마치 음식 전체에 깨 뿌리듯 포진되어 있다. 코스프레 댄스 장면에서도 이병헌의 장기가 제대로 발휘된다.
“시나리오에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춤을 추면서 간다’였다. 부둥켜안고 추는 춤이라서 상대방을 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다가가는 거였는데 안무가 바뀌면서 지금 모습이 되었다. 만수가 그동안 춤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몸이 기억하는 거다. 군중 속에서 튀지 않기 위한 특이한 접근 방법인데 병헌 씨가 그렇게 출 줄은 몰랐다. (웃음) 제작진끼리 제일 많이 웃은 장면이다”라며 덧붙였다.
대놓고 웃기겠다는 노골적인 유머가 ‘고추잠자리’신에 응축되어 있다.
그는 “고추잠자리 신하고 부부 싸움 신에서 많이들 웃으시는데 계획한 건 아니다. 인물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상황이니, 고함을 치게 되고,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한다. 흥분된 상황에서 신을 시작하니 모두 강렬해졌고 다들 미쳐 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만수와 미리가 코스프레 무도회를 마치고 싸우는 장면을 두고는 “이경미 감독이 쓴 대사였다. ‘너도 예쁘잖아’, ‘너도 잘 생겼잖아’를 주고받다가 만수가 인정한 듯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표정도 웃기다. 기세에 밀리니까 미리에게 ‘전쟁 중이잖아’라며 같잖은 소리 할 때 두 사람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라고 칭찬했다.
제목 ‘어쩔수가없다’처럼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 액스(도끼)의 추천사에 한국 제목으로 바꾼다면 ‘모가지’로 하겠다고 쓴 적 있다. 하지만 이는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살인을 직접적으로 연상한다는 만류로 지금의 ‘어쩔수가없다’로 최종 결정되었다. 띄어 쓰지 않고 붙여 한 단어처럼 만들면서 감탄사가 만들어졌는데 이 말을 하루 동안 얼마나 쓰는지 세어 봐도 재미있겠다. 버릇처럼, 유행어처럼 전작 ‘헤어질 결심’같은 밈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영화의 분위기와 본인 성격의 확연한 차이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게 될 어쩔 수가 없는 이유다.
“저는 스토리텔러 중 캐릭터에 저를 투영하지 않는 타입의 감독입니다. 캐릭터의 내면을 상상하는 것은 별개라 그들이 제 안에 적게 들어있는 감독에 속하죠. 작품을 만들 때는 잘 하려고 기를 쓰지만 평가를 받는다거나, 누가 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래서 긴장도 잘 하지 않고 크게 흥분하지 않는 이유처럼 보이죠. 그저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될 일이지’라고 노력도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박찬욱 감독과 나눈 작품의 세심한 작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의도하지 않게 만난 동갑내기 배우들이 만든 명장면들

-원작과 가장 다르게 각색된 방향은 무엇인가?
근본 차이는 가족이 안다는 거다. 아들이 먼저 보고 아내도 알게 된다. 만수가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행동(연쇄살인) 때문에 가정이 망가지고 무너져 허무함이 되어 버렸다. 거대한 패러독스인데 원작과 다른 점이다.
-원작처럼 살인이 초반부터 일어나지 않고 만수와 가족의 상황을 오래 설명하고야 시작한다.
차분히 관객이 만수를 따라가길 바랐다. 행복의 절정에서 시작해야 그가 살인을 결심하고 계획하는 모든 게 순서대로 일어나게 된다. 관객이 만수를 관찰하고 공감하면서 가까워지고, 살인을 저지르면 비판적으로 관찰하면서 관객과의 거리감이 계속 변했으면 했다. 초반에는 만수에게 홀딱 넘어가서 그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응원하게 된다. 실수도 하고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면 걱정과 안타까움이 들면서 감정이 발전한다. 그러다가 문득 살인이 일어나고, 나머지 둘이 더 남아 있으니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내내 감정을 투영한 인물이 더 이상 도덕적인 추락을 하지 않길, 가족이 알면 안 된다는 마음까지 갈팡질팡하길 원했다.
-살인의 정당성도 이병헌이란 배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병헌이란 배우는 눈만 봐도 설득되는 힘이 있다. 어느 배우보다 호소력이 큰 배우다. 만수가 범모에게 ‘돈을 못 벌면 짐이라도 날라’라고 말하잖나, 그게 관객이 만수에게 하고 싶은 말인 거다. 만수도 알고 있다. ‘너는 왜 셋이나 죽이냐’고 묻는다면 만수는 똑 부러지는 답을 하지 못할 거다. 소중한 집도 지켜야 하고, 딸 첼로도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가 살인의 정당한 이유는 아닌 거다. 관객이 이런 도덕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만수를 돌봐주고 싶어 하는 양가적인 마음이 들게 하려는 의도다.
-만수가 제거해야 할 대상인 시조, 선출을 맡은 배우의 나이도 엇비슷하다.
의도했던 건 아니다. 대략 이병헌, 차승원, 박희순이 동갑이라는 건 인식하고 있었다. (이성민은 68년생) 70년생 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가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영화계에서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만수와 그들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지닌 관계처럼 보여 비슷한 연배를 설정하긴 했다.
왜 단독 주택? 왜 제지 회사가 배경이 되어야 했나?

-만수에게 집은 가족처럼 지켜야 할 또 다른 존재다. 만수가 어릴 적 집을 어렵게 되찾은 것처럼 ‘집’은 또 하나의 캐릭터로 읽힌다. 한국인을 상징하는 아파트가 아닌 마당 있는 단독 주택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만수 분신의 연장선이다. 집에 집착하는 건 만수와 선출이고 범모는 장인 집이라 집착까지는 아니고 음악 감상실의 애착 정도가 있다. 선출은 확실히 집의 애착이 크다. 미리가 만수를 ‘식물인간’이라 칭할 만큼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아이디어를 녹여 내려면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집이어야 했다. 계절의 변화를 관객이 항상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단풍을 담아야 해요’였다. 단풍과 낙엽을 담기 위해 여름의 절정에서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며 겨울을 예고하며 영화가 끝난다. 시조는 직장만 나왔지만 아파트에 살 수도 있겠다. 사실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희생자도 시나리오에 있었다. 세 명을 죽인 것과 네 명을 죽인 건 다른 문제고 분량도 길어져서 편집했다. 네 명까지 죽이면 저도 만수에게 정을 못 줄 것 같아 아파트 거주자가 사라졌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한 향수인가. 왜 제지회사여야 했나?
원작이 제지 업계였는데 벗어날 생각을 해보긴 했다. 하지만 공장 허가도 어렵고 기계가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도 있어 촬영 허가가 쉽지 않았다. 결국 제지 회사만큼 좋은 환경을 못 찾았다. 종이가 누구에게는 촉감을 비유하듯 중요한 존재이지만 일상에서는 종이가 하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또 사양 산업 같아도 요즘은 포장 배달이 많아서 잘나가는 분야기도 하다. 시조가 ‘흰 종이 뜨는 사람’이라 말한 것처럼 누런 폐지와 구별되는 고급 특수지 업계는 전문성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만수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집에 와서는 식물인간이란 말을 들으면서까지 분재 가꾸기에 열중한다.
정원, 온실 설정은 성희 씨가 분재를 제안하면서 만들어진 각본이다. 제가 ‘너무 일본적이지 않냐’고 하니, 황당해하면서 일본만의 문화가 아니라고 하길래 분재의 세계를 알아봤다. 기기묘묘했다. 우주의 축소판 같았다. 분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구부리다가 부러지기도 하니까. 어쩌면 버려져서 죽을 수 있는 식물을 애지중지 가꾸면서 영양도 공급하고 돌봐 오래 살게 만드는 애정의 양면성도 만수를 보여주는 장치다. 원래 시조의 처리 방법을 포스터로 만들고 싶었는데 다들 기겁해서 참았다. (웃음) 성희 씨는 언제나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만수가 내내 충치로 고생하더니 결국 뽑아 버린다.
출발은 단순했다. ‘취직하면 치과 간다’는 만수의 고지식한 똥고집이다.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다. 만수를 형성하는 특징 중 하나이고 어리석은 고집을 상징한다. 알코올 의존 문제 때문에 시달렸던 만수가 선출과 어쩔 수 없이 폭탄주를 마셔야 했는데, 그때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다. 9년 동안 억눌렸던 해방감인데 무식하게 보드카로 입을 헹구지 않나. 그때 마침 음악도 바로크풍의 격렬한 음악이 터져 나가면서 ‘시원하다!’라고 말한다. 모든 과정이 치통에서 시작되었다. 병든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거나, 무당벌레가 배나무 잎을 갉아 먹는 이미지가 디졸브 된다거나, 딸아이가 이 대사를 반복하는 것도 연결된다.
-술 의존도와 함께 내면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건가?
만수는 술에 취하면 폭력성이 나오기도 하고 멀쩡할 때도 그랬을 수 있겠다. 미리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남편의 불안이 계속 가중되고 있음이 중요하게 작용할 거다.
박찬욱 감독의 일생의 역작 ‘어쩔수가없다’ 이 영화는 그에게 어떤 의미?

-부부는 선생에게 리원의 천재성을 듣지만 좀처럼 부모 앞에서는 첼로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리원의 연주는 드라마적인 필요에 의한 거다.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환영 콘서트를 열어주는 거다. 엄마가 중간에 문 열고 들어와 볼 때도 의뭉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다만 만수가 없을 때 연주하는 건 아빠는 배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리지널 작품과 원작 있는 작품의 차이가 있나?
솔직히 원작 유무의 차이는 없다. 다만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 ‘동조자’는 예외다. 그 이야기는 지리, 정치학, 시기적으로 특정한 상황이다. 많이 고치지 않고 원작에 충실히 하려고 했다. 종종 TV에서 뉴스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오리지널 각본을 쓸 때도 있다.
-만수에게 제지공장 취업은 목숨 같은 인인데 영화를 만든다는 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만수나 범모가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삶의 모든 것으로 삼는 게 어리석다고 묘사된다. 저도 그때도를 반성하게 된다. 영화를 못 만들면 죽음 목숨인 건가? 그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작업이 삶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나라는 사람도 사진 작업을 하면서 그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영화감독은 나이 먹지만 함께 일하는 연출, 제작부는 늘 2030세대다. 그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딸과도 소통하면 요즘 이생각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모던 타임즈’처럼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 사람의 슬픈 인생을 두고 웃기려는 영화라고 비판하면 너무 단선적인 평가다. 인생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요하다. 유머는 연민에 기초되어야 하지 냉소주의로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저도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