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 배우를 만나다
25년간 헌신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후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는 구직자 유만수로 돌아온 배우 이병헌.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가 결합된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그는 특유의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웃음과 동시에 씁쓸함을 안겨줬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20여 년 만에 박찬욱 감독과 재회하여 기대를 모으는 이 작품에서, 이병헌은 “촬영하면서도 ‘이 영화 빨리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전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4일 이번 영화를 크게 기대하고 있는 이병헌을 직접 만나 ‘어쩔수가없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출연 소감을 함께 나누었다.
*스포주의: 영화의 큰 스포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 혹은 특별출연 배우에 대해 알고싶지 않은 관객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이 기사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해당 기사는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싶을때 보기 좋은 기사입니다.

-공개를 앞둔 소감은?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반, 그리고 이게 어떻게 나올까 하는 궁금증 반이 컸다.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는 후반에 정말 많은 창작적인 요소들이 등장하기에 내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만수에 대한 설정은 어떻게 봤나?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무시무시한 캐릭터로 변하게 된다. 첫번째 범죄에서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다가, 두번째 부터는 죄책감이 옅어지는 역할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변하는 이야기인 만큼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어서 최대한 인물의 심리 변화에 맞춰 연기했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소감은?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감독님의 유머를 마주한 소감은?
‘공동경비구역 JSA’때 부터 감독님과의 작업을 즐거워 했다. 그래서 서로 유머를 주고 받고는 하는데, 세월이 오래 가다보니 이제는 상대방의 유머에 웃어주려고 하지 않는다.(웃음) 생각해 보니 서로의 유머 코드는 다른데, 나중에 감독님이 우리의 정서를 생각해 공통 분모의 유머로 만들어 주시는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해외 관객들만의 반응이 다른점이었다. 해외 관객들은 내가 시조(차승원)에게 총을 쏘기전 얼굴을 가리고 발사하는 그 장면에서 다 웃었는데, 누가봐도 그건 웃기려고 만든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분들은 그 장면을 웃기는 장면으로 보고 있었다. 감독님 생각으로는 주인공의 심리 상황을 사람들이 이해해서 웃은것 같다고 한다.

-배우님께서 처음 각본을 보고 ‘웃겨도 되요?’ 라고 감독님께 물으셨다고 들었다. 이 캐릭터를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신거였나?
나에게는 ‘어쩔수가없다’는 웃긴 작품으로 다가왔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혹시 감독님 의도가 내가 웃기는게 맞나 싶어서 이를 체크하고자 감독님께 여쭐려고 그렇게 물어본 거였다.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영화를 찍을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내가 일부러 웃기면 안되는 거였다. 내가 너무 의도적으로 웃기려 하면 그게 관객에게 불편하게 다가올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웃기고 재미있지만 되도록이면 진지하게 대하려고 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우리 영화를 보고 슬랩스틱이라고 언급했는데 그 평이 참 신기했다. 슬랩스틱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그렇게 재미있는 코미디로 봐주셔서 흥미로웠다. 나는 웃기려는 의도보다는 주인공이 절실한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원작소설 ‘액스’를 읽어본 사람 입장에서 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원작의 하드보일드한 정서와 달리 이 작품은 완벽한 블랙코미디 느낌이 강한 점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원작의 희생자를 비롯한 아내 캐릭터로 대변된 조연 캐릭터들의 개성넘치는 연기와 존재감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맞다. 이 영화는 만수의 여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배우인 나에게 있어서 한사람씩 찾아 다니며 그들과 붙을때 마다 개성있는 그들만의 연기를 마주하는게 참 재미있었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표정을 보는게 너무나 재미있었다. 예전에 ‘남산의 부장들’에서 그런 경험을 한적이 있었다. 대부분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었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함께한 이성민 배우와의 호흡은 너무 좋았고,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염혜란, 손예진, 박희순 배우와 길게 맞춰본 것은 나에게는 즐거운 모험이었다.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는 처참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어떤 관객분들은 내 캐릭터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것에 대해 아쉬워 하며 ‘뭐가 이렇게 시원하지 않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만수는 결국 새로운 일터를 잡았지만, 그를 비롯한 가족들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다. 새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나온 범죄가 그들 모두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만수는 새 직장에 만족하는듯 보이지만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표정이 씁쓸해 보이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동화 공장에서 갈팡질팡하고 있고, 아날로그 공장 시대의 버릇인 제지들을 막대기로 때리며 확인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하고있다. 25년 간 그것밖에 할줄 모르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일을 다시 하려고 이런 일을 한것이기에 참 슬픈 결말이다.
-고추 화분을 던져 ‘살인할까? 말까?’한 연기 장면이 압권이다. 그 표정은 어떻게 완성하신건가?
감독님이 따로 주문하신 표정 연기는 아니었다. 그 장면에서 만수는 와이프가 소파에서 농담으로 말한 ‘경쟁자들을 죽여버려’라는 말을 진짜로 할까 갈등하게 된다. 그 표정은 만수가 잠깐 사람이 도는 느낌으로 경계선 사이에 선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가 화들짝 자기 자신에게 놀라서 무슨 미친 생각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다 결국 그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실행하게 된다. 처음에 어설펐던 그의 범행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계획적으로 흘러가면서 계획적인 인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화제가 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노래를 배경으로 이성민과 염혜란과 붙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그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싶다.
쉬운 장면이 아니었다. 염혜란 배우가 총들고 뛰어올때 내가 뛰는 장면은 정말 목숨을 걸고 연기한 것이었다.(웃음) 그때 혜란 배우가 뛰어오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무서웠다.(웃음) 염혜란 배우와 성민이 과 함께 뒤엉킨 장면은 리허설만 여러번해서 완성한 장면이다. 나에게는 부담감이 큰 장면이었다. 연극적인 느낌도 있었고, 이 장면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염혜란 배우가 발가락에 상처가 난 상태였고, 골절까지 난 생태여서 모두가 걱정했다. 그런데도 배우님이 정말 큰 열연을 펼쳤다. 레슬링을 하는 듯한 장면을 참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참을성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인터뷰에서 AI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치셨다. 영화의 결말도 그와 같은거라 배우들 입장에서 큰 위기의식을 느끼셨을것 같다. 근래들어 촬영장에서 AI와 같은 기술력에 그런 공포감을 느끼던 순간이 있으셨는지?
꽤 명확한 위협을 느낀적이 있다. 최근에 한 아는 배우의 짤막한 쇼츠 영상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 친구에게 직접 보여줬는데, 그 친구가 이 영상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 순간 소름끼쳤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었다. 며칠전 이정재씨와 내가 브로맨스를 나누는 진득한 AI 영상을 나도 보게 되었는데…(웃음) 나도 깜짝 놀랐다. 지금보니 이 위기가 우리 배우들 입장에서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우리 배우들이 AI에게 대채되는 것에 대해 대책을 나누어야 하는데, 벌써 기술력이 너무 빠르게 위협적으로 진행되는것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