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개봉하는 이상일 감독의 신작 영화 ‘국보’
재일교포 출신 이상일 감독의 신작 ‘국보’는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의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예술가의 삶과 그 이면에 숨겨진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7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두 남자의 치열한 경쟁과 예술에 대한 헌신을 따라가며 몰입하게 된다.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국보’는 단순히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의 숙명과 인간의 본질적인 갈망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격정과 헌신, 예술가를 만든 두 남자
영화 ‘국보’는 야쿠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가부키 명문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키쿠오(요시자와 료 분)와, 그의 아버지이자 가문의 후계자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키쿠오는 타고난 천재성을 지녔지만, 일본 가부키 사회의 뿌리 깊은 ‘혈통주의’ 앞에서 그의 재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반면, 슌스케는 가문의 후광을 업고 있지만 키쿠오만큼의 재능을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설정은 재능만으로는 예술 세계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과, 혈연과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폐쇄적인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는 “네 피를 마시고 싶다”는 키쿠오의 절규와, 슌스케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까, 우리 가문의 피가 너를 지켜줄 것”이라 말하는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 이러한 비극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온나가타’의 고뇌,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진실

영화는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성 배우인 ‘온나가타‘의 삶을 조명하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이상화하고 재현하는 과정의 모순을 보여준다. ‘온나가타’는 완벽한 여성성을 연기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는 ‘공상적 생물’과 같다. 이상일 감독은 17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가부키 무대의 화려함과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균형 있게 담아냈다. 배우들은 1년 이상 실제 가부키 수련에 참여하며 역할에 몰입했고, 감독은 이러한 노력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영화 속 가부키 공연 장면은 시각적으로 뛰어나며, 일본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 이면에는 예술가로서 겪는 고통과 희생이 존재한다. 주인공들은 예술적 성취를 위해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때로는 타인의 희생을 외면하기도 한다.
이상일 감독의 집요함이 빛난 연출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보’를 통해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영화는 감독 자신의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너는 누구의 유산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보’는 단순히 가부키라는 특별한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능과 혈통, 열정과 희생, 아름다움과 고통이 뒤섞인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관객들은 깊은 울림을 얻게 될 것이다. 비록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예술적 경지는 충분히 그 시간을 견딜 가치가 있다.